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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oween's Day

 By. 유키

 

   10월 31일. 세간에서는 이 날을 할로윈이라고 지칭하며 대체로 어린 아이들은 괴물이나 마녀, 유령으로 분장한 채 이웃집을 찾아다니면서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는데, 이때 외치는 말이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야!’라는 의미의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다.

-하지만, 실상은 이리 가벼운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날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내세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간 세계를 찾는 날이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이때 열린 지하 세계의 문을 통해 악마와 마녀, 짓궂은 유령들도 함께 올라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악령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악령이 사람들을 그들의 일부로 여기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분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긴 설명을 하는 이유는, 단 한 문장 때문이었다.

 

-이미 이 세계를 떠난 자들이 내세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시금 인간 세계를 찾는다.

 

   눈이 뜨인 것은 갑자기였다. 불현듯 닥치는 햇살의 따가움에, 제 코를 찌르는 바닷내음에 제파의 눈이 감겼다가 느릿하게 뜨였다. 제파는 제 몸을 바라봤다. 주먹을 쥐었다피었다하기도 했고, 혹시나 싶어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기도 했다. 쿵, 작지 않은 소리와 함께 땅에 착지했을 때 제 발에 닿아오는 모래의 감촉. 부드럽고도, 따스한.

 

   제파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아, 작은 소리였음에도 저에게 소리가 되어 돌아온다. 제 성대가 제대로 발음을 하고 있었다.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축이니, 촉촉해진 감촉이 든다. 평생을 장인으로 살아온 사람의 눈이 뜨인 것처럼. 무채색의 세계에 갑자기 색이 펼쳐진 것처럼. 

   마치, 자신이 살아 있었던 그 때처럼.

   제파는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살아 있다면, 저를 괴롭히던 천식이 없어졌을 리가 없다. 제 몸을 꿰뚫었던 보르살리노의 능력으로 인한 상처가 없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제 잃어버렸던 팔이, 이리 멀쩡히 붙어 있을 리가 없었으니.

 

   너희들을 잃었던 그 날, 두 번 다시 돌아올 리 없다고 믿었던. 너희를 지키지 못한 대가로 잃었던 나의 팔이, 그대로 붙어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 탓에 인공 팔조차 거절한 채, 능력자와 싸우기 위한 기계 팔을 달았던 것이고. 제파는 제 오른팔을 왼팔로 붙잡았다. 세게 쥐면, 부러질까. 너희들이 스러지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내가 이 팔을 달고 있다니. 그것은 죽음의 상태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저의,

"...선생님?"

 

   제파는 갑자기 들려온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20년을 넘게 들어온 호칭에 대한 조건반사이기도 했고, 낯익은 목소리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뭐하냐?"

"어? 아냐. 뭔가, 제파 선생님을 닮은 사람을 본 거 같아서."

"쉿쉿! 그 분의 성함을 입에 올리는 건 금기잖아!"

"우리뿐인데 뭐 어때."

"게다가, 그 분은... 에이, 네가 잘 못 본 거겠지."

   저의 제자들 중 하나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리를 벗어나는 자를 향해 입을 뻐끔거리다가 다물었다. 딱히 잡고 싶은 기분이 들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제파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있는 장소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익숙하고도, 익숙해지지 않는 장소. 현재 사카즈키가 원수로 있을 뉴 마린포드임에 분명했다. 어째서? 가장 먼저 든 의문은 그것이었다. 제파가 죽었던 장소는 마린포드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제파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동료들의, 제 제자들의, 죽음이 한가득인 그 익숙한 장소도 아니라, 새로운 장소인 것도 모자라 자신이 죽었던 그 위치도 아니었다. 무엇이 저를 이곳에 데려다놓았는가. 제파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사박, 모래가 밟히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사박사박. 발에 스치는 모래가 태양빛을 받아 일순 반짝거렸다. 빛이라. 능력에 의존한다고 저에게 잔소리를 듣던 제 제자가 문득 생각났다. 그리고 항상 그 옆에 있던, 붉은. 제파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저녁 노을이 붉게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저에게 보르살리노를 보냈을 현 해군의 원수이자 제 제자가 생각이 난다.

 

"Trick or Treat!"

 

   그리고 불현듯 들려온 소리에 제파는 깜짝 놀라 자동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제파의 눈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번뜩거렸으나, 상대를 확인한 제파는 눈을 깜빡거리며 몸에 힘을 풀었다. 한 꼬마 아이가 검은 옷을 입고 뿔 모양 머리띠를 한 채 저한테 호박 모양의 바구니를 흔들더라. 본능적으로 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핀 제파는 아이가 다시금 같은 말을 뱉으며 점점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 것에 당황했다.

 

   그도 그럴게, 제파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Trick or treat, 인지 뭔지 그것을 알 리가 있나. 18살, 해군에 들어온 이래 자신이 죽을 때까지, 싸움의 연속이었던 제 삶 속에 이런 축제는 익숙지 않았다. 대장이었을 당시에는 제 목표를 따라, 정의를 따라 싸웠고, 제 가족의 죽음 이후로는 제자들을 육성하는 데에 치중했고, 그리고 그 해적. 그 해적에게 제 제자들이, 죽음을 맞이한 이후로는 그를 없애기 위해 싸웠다.

 

제파가 이도 저도 못하고 한층 당황하고 있을 때,

 

"없으면 장난 칠 거야!"

 

  라며 아이가 돌연 저한테 달려들었다. 본능이 그를 뒷걸음질치게 했다. 아이조차도 위험한 곳, 그곳이 신세계였고, 마지막으로 만났던 아이, 가프의 손자 역시 해적이었지 않은가. 이곳이 마린포드라고 한들 긴장을 온전히 놓을 수 없었다. 덕분에 거리가 유지되니 아이가 한층 더 부루퉁한 표정이 되었다. 채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는 재미없어! 를 소리치며 저로부터 멀어졌다. 제파는 아이가 향한 방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제 시야에 들어온 것은 웅장하게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해군 본부더라.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충동적이었다. 정말 간만에 들어선 해군 본부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니, 그 위에 있는 사람의 성격을 따라 한층 더 날이 서 있었다. 제파는 바쁘게 뛰어다니는 해군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도베르만, 오니구모, 스트로베리. 그리고 얼굴을 아는 다른 녀석들 전부 그를 보지 못한 듯했다. 하긴, 제법 바빠보이니. 고개를 주억거린 제파는 고개를 들었다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해병 하나에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저런 속도로 다가오면 분명히 충돌할 것이 뻔했다. 저를 보지 못했나 싶어 입을 열려는 찰나,

 

-그 해병이 제 몸을 쑥 통과했다. 제파의 눈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 어?"

 

   이상을 느낀 것인지 그도 멈춰 서서 제 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제파는 반응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다시 죽음을 상기하게 되다니. 표정을 와락 구겼다. 순간적으로 제 육체가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재구성되는 모든 과정을 의도치 않게 보게 된 기분이란, 정말. 머리를 두어번 긁적이던 사내는 그의 이름이 불리자 다시 달려갔다. 그의 뒤를 눈으로 좇으며 제파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제 쪽에 시선을 두었다 생각하는 녀석들의 시선들도, 제 앞을 스쳐지나는 해병들도. 이들의 세계에는 자신이 없구나.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에게 태양의 뜨거움을 다시 느끼게 해준 것인가. 어째서, 모래의 느낌을. 지금 걷고 있던 나뭇바닥의 느낌 하나하나를 전부 느끼게 해주는 것이냐 이 말이다. 한순간의 달콤함이라도 되는 것인가. 머리를 쓸어올린 제파는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다시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 존재였다.

 

   살아 있는 제자들, 그들은 보지 못할 마지막의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나야지.

 

   사카즈키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할로윈인지 뭔지 정체 모를 축제를 열어 이상한 옷들과 말들로 정신 사납게 하는 것도 모자라 요즘 들어 해군들이 하나같이 입 모아 하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게 죽은 제 동료들이, 가족들이 저를 만나러 온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로 정점을 찍어, 수많은 해군들이 죽상이 되어 있거나 휴가 신청을 낸다는 둥 어이없는 말들로 제 머릿속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제일 시끄러운 건,

 

"...넌 안 가나?"

 

   달칵달칵 손톱을 깎고 있는 보르살리노가 아니었을까.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으로 인해 날카로운 신경이 저 소리에 한층 더 예민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신경 세우지 말라고~."

 

   이 와중에도 느긋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에 사카즈키는 끝내 혀를 차기에 이르렀다. 손톱 잘 치워라, 라고 대강 말을 뱉은 사카즈키는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가 달칵 소리도, 대답 소리도 내지 않는,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아닌 보르살리노에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사카즈키의 시선이 어딘가 익숙한 검은색의 코트를 입은 사내의 몸에서 시선을 올림과 동시에, 보르살리노의 손에서 손톱깎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여기는 오랜만이구나."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저와 시선을 맞추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아차림과 동시에 사카즈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가 어디라고,"

 

   보르살리노가 몸을 움직이는 것도 느껴졌다. 현 해군 본부 최고 전력 두 사람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며 보라색 머리의 사내를 응시했다. 눈을 순간 크게 뜬 그가 숨을 훅 들이쉬고 내쉬는 것, 입을 달싹이는 것, 하나하나.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떨어진 말에 사카즈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속 어딘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어차피 이미 죽은 몸. 두 번 다시 그런 계획 따위 실행시킬 기운도 없고, 기분도 아니니."

 

   저 말이 거짓일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 말 한 마디에 힘이 슬며시 풀리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카즈키는 부러 주먹을 더 세게 말아쥐며 입술 안쪽을 살며시 깨물었다. 누가 그의 존재를 이곳까지 허용해줬단 말인가. 사카즈키의 시선이 힐끔 문 바깥쪽을 향함과 동시에,

 

"소용 없다."

"?"

"여기까지 오는데 알아차린 녀석이 없단 소리다."

 

   떨어진 말에 다시금 그의 시선이 제파에게 돌아갔다.

 

"적어도 오는 길에 마주친 녀석들 중에는 말이다. 다들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마치 보지 못한 양 지나치더구나."

"..."

"...이 세계에 미련 따위 두고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건만."

 

   어느새 혼잣말을 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는 제파에 사카즈키의 미간이 왈칵 찌푸려졌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눈빛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알아보기 어려웠다.

 

"오는 동안 날 알아본 건 아이 하나와 제자 중 한 명이었다."

"..."

"더 정확히는 아이 하나겠지. 그 녀석 긴가민가해했거든."

"..."

"나도 너희의 눈에 내가 보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사카즈키와 보르살리노는 눈동자만 굴려 서로를 쳐다봤다. 때마침 노을빛이 집무실을 내리쬐었다. 동시에, 그 둘의 눈에는 명확히 보였다. 그림자가 없이, 빛이 투과하듯 그의 몸을 지나는 것을. 이런 식으로 그의 죽음을 다시 직면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착 가라앉은 시선들이 그를 향했다.

 

"...그래, 잘 지냈느냐?"

 

   어색한 침묵을 깨고 툭 튀어나온 목소리에도 두 사람은 반응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것쯤은 안다. 나도 믿기질 않으니."

"...왜 여기까지 온 것이오."

 

   못마땅한 듯 가라앉은 목소리가 사카즈키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제파의 시선이 여전히 건재한 제자에게로 향했다.

 

"눈을 뜨니 여기였을 뿐이다."

 

   거짓은 아니다. 실제로 '여기' 마린포드에서 눈을 뜬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듯 사카즈키의 시선은 제파를 느릿하게 훑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선에 의심과 경계가 덕지덕지 붙어 있음을 그의 스승이었던 자가 모를 리 없었다.

 

"얼마나 여기에 있을 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너희와 나의 마지막일 수도 있겠지."

 

   제파는 괴물 1기생이라고 불리는 제 제자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는 지나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날에 대한 향수가 깊게 밀려온다. 날카롭게 벼려진 눈빛들이 저를 꿰뚫을 듯함에도, 제파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난,"

 

   사카즈키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러고도 몇 번을 달싹이더니,

 

"ㅈ,"

"아무리 그래도 해군의 적이지 않나~."

 

   늘어지는 목소리와 다르게 웃음기 하나 없는 보르살리노의 표정에 제파는 순간적으로 터져나올 뻔한 웃음을 헛기침으로 간신히 감추었다.

 

"...당신은 여기에 와서는 안 됐소."

 

   그 뒤를 이은 사카즈키의 목소리. 제파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트'는 해군의 적이었다. 신세계에 주둔했던 모든 자들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그들의 정의에 위배되는 조직의 리더였다. 그렇지만,

 

"...그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을 뿐이다."

 

   씁쓸함이 입가에 맴도는 것은 어찌하지 못했다. 지금도, 저 둘은 손을 까딱거리며 저를 경계하고 있었다. 제파는 장성한 두 제자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을 실컷 보기라도 하는 사람마냥. 이런 식으로라도 기억하고 싶은 사람 마냥.

 

"...쿠잔은 잘 지내느냐?"

"...떠날 자가 궁금해할 사항은 아닌 거 같은데~."

"그 얼간이, 나는 모르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저에게 정보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 가까웠던 이들과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결국은 자신이었으니.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제파는 같은 선택을 내렸을 것이다. 그걸 본인이 더 잘 알았기에, 이들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

"너희를 다시 만나 기쁘구나."

 

   이건 자신의 진심이었다. 이들에게만 보이던 것이 우연이라면, 정말 진심으로 그 우연에 감사해야만 했다.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인사를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제트'가 아닌, '제파'로써.

 

"너희는 내 존재를 믿을지, 아니면 꿈으로 치부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내가 할 말은 길지 않다. 이 말만 들어라."

 

   그래, '제파'가 장성한 제자들에게 남길 말이란 길지 않았다. 길 수가 없었다. 이들은 이미 너무나도 훌륭한 해군이었다.

 

"어떠한 순간이 오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언제나 그랬듯이 나아가라. 군함이 파도를 뚫고 나아가듯, 모든 역경들 앞에 좌절하지 마라. 이제 더 이상 너희들을 건드릴 수 있는 것들은 없겠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노파심이었다.

 

"그리고, 자만하지 마라."

 

   제파의 시선이 보르살리노에게 정확하게 꽂혔다. 이것은 신병 시절 때부터 그가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누누이 경고하지만, 보르살리노."

"..."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마라."

"..."

"그 느긋하다가 못해 게으른 성격 좀 고치고."

 

   어느새, 해군 사관학교 시절의 그 때처럼 늘어놓는 잔소리 같은 말에 보르살리노는 대꾸 없이 제파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사카즈키. 너도 마찬가지다."

"..."

"확실히 너희들의 능력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 너희들은 훌륭하게 자라줬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여즉 성격 하나를 못 고치고 있다니."

"...잔소리는 그만둬주시죠~"

 

   제파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마치 네가 오죽 좀 잘했으면 내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겠느냐, 라는 듯의 표정에 보르살리노의 입이 다물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래, 하긴. 이제 다 자란 너희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제법 우습구나."

"..."

"...보르살리노, 사카즈키. 한 가지만 대답해 다오."

"..."

"...나는 너희에게 있어, 좋은 스승이었느냐?"

 

   양심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가 최후에 벌인 짓은 막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는 결국 제자가 저를 멈추게 하는 사태를 발발시킨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최악의 스승이었죠..~"

 

   보르살리노는 그리 대답하고, 사카즈키는 대답이 없었다. 침묵은 무언의 긍정인 것일까. 제파는 작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제가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당신은,"

 

   제파의 고개가 휙 올라갔다. 저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카즈키가 말을 이었다.

 

"...최후의 당신은 최악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으로써의 당신은, 최고였습니다."

"...당신은 최고의 스승이었습니다."

 

   아아, 제자의 그 한 마디란. 제파는 제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감정을 확실히 느꼈다. 너희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어서 기쁘다. 그와 동시에 제파의 몸이 천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 둘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었다. 그런 제자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제파는 최대한 인자한 웃음을 띄웠다. 

 

"...못난 스승을 둔 너희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그 선택을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희들에게 어떤 언질도 없이 자리를 비워서 미안하다. 너희들을 등져서 미안하다.

 

"...부디, 잘 지내거라. 쿠잔과는 싸우지 말고,"

"...그건 장담할 수 없소."

 

   어느새 다시 원수로 돌아온 사카즈키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제파는 그 귀여운 반응을 보며 웃음을 참지 않았다. 사카즈키는 쿠잔이 검은 수염 해적단과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해군을 나간 녀석이다. 어차피, 이제 사라질 사람이 그 사실을 알아봤자다.

 

"...날 좋은 스승이라고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는 사라졌다. 마치 방금 전의 일들이 꿈이었던 것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카즈키는 가만히 제파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장소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어디 가는 거야~?"

"일하러 간다. 너도 이제 그만 일하러 가라."

"술 한 잔 할래~?"

 

   일하라는 말에 술 이야기를 대뜸 꺼내드는 것에 사카즈키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지만,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는 것에 보르살리노는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사카즈키는 어깨를 잠시 들썩이다가 말았다. 제 팔을 뿌리치지 않는 모습에 여유로운 미소를 띈 보르살리노는 잠시 고개만 돌려 집무실 쪽을 바라보다가,

 

"어디로 갈까~?"

"...오늘은,"

"항상 가던 데로 가자고~."

 

   사카즈키가 옆에서 한숨을 쉬는 것을 들었지만 보르살리노는 그저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의 입가가 순간 경직되었던 것을 스치듯 본 사카즈키는 코웃음을 작게 치며 눈동자를 굴렸다.

 

-10월 31일, 이 날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내세로 떠나기 위해 인간 세계를 찾는다. 

 

 

 

 

그것도, 그를 가장 그리워하던 존재 앞에. 그 본인이 가장 그리워하던 존재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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