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똑똑똑, 트릭 오어 트릿!

By. 정다온

   깜박 잠들었다. 채 가시지 않은 잠기운에 느릿하게 눈을 끔벅이며 책상에 엎드렸던 허리를 천천히 바로 세웠다. 옆으로 기울인 목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불편한 자세로 한참을 잔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쭉 기지개 펴며 둘러본 집 안이 온통 어두컴컴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희끄무레한 노을빛만이 아슬아슬하게 주위를 밝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 참 오래도 퍼질러 잤다 싶어 혀를 쯧, 차며 눈앞의 성냥을 집어 들었다.

 

   치익! 스크래치에 긁힌 성냥에 불이 붙었다. 그게 촛대에 꽂힌 촛불로 옮겨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서너 개를 밝히고 나니 그럭저럭 괜찮은 밝기였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쓰임을 다한 성냥불을 끄려는 참이었다.

 

“아.”

 

   성냥불 뒤로 낯선 것이 보였다. 창문 앞에 올려진 주먹 크기의 작은 것. 장난스러운 표정이 선명하게 새겨져, 안에는 깜찍한 촛불까지 들어있는 주황색 호박이었다. 저 게 웬 거여. 그리 생각한 마르코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다가 빠르게 펴졌다. 누가 저 호박을 줬는지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에이스.”

 

   마르코가 이름을 낮게 읊조리며 웃었다. 그래. 막내가 줬었지. 저번에 할로윈이란 걸 처음 듣고 신이 나서는, 각종 물건에, 사탕에, 저 째깐한 호박을 샀었고. 그때 하나 받았던 게 기억났다. 분위기를 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었나? 사실은 너무 많이 산 거면서. 할로윈. 할로윈이라……. 가만. 오늘이 며칠이더라? 마르코가 가만히 날짜를 셈했다. 엊그저께 아버지 정기 검진 일이었으니 오늘이…, 31일. 딱 할로윈 데이구먼. 생각을 그친 마르코의 시선이 빠르게 타들어가는 성냥을 흘겼다.

 

“분위기라…. 뭐, 기왕 받았으니 나쁘지 않나.”

 

   씩 웃은 마르코가 성냥을 들어 깜찍한 촛불을 밝혔다. 호박에 빛이 들어와 주홍색으로 빛이 났다. 완벽한 잭오랜턴이 된 셈이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 마르코가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귀엽구먼.”

 

   손을 가볍게 흔들어 성냥불을 끈 마르코가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성냥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언제 그곳에 시선을 두었냐는 듯 무심한 얼굴로 책상 위를 바라봤다. 어지럽게 펼쳐진 책들과 종이 쪼가리가 절로 한숨을 자아냈다. 그럼에도 마르코는 묵묵히 펜을 들었다. 다시 선의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훌쩍 흘렀다. 잭오랜턴 뒤 창가에 비치는 하늘은 새카맣게 물들어 별빛을 보이는 밤하늘이 된지 오래였고, 그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으슬으슬한 찬바람은 새벽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보통 사람이라면 피로에 지친 눈을 감거나, 뻐근하게 굳어가는 어깨를 돌리며 주위를 돌리기엔 충분한 시간이 지난 것이다. 하지만 마르코는 그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었기에,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만 높아져 하염없이 글자만 정독했다. 깃 펜을 움직이는 손도 지칠 줄을 몰랐다. 그렇게 새하얬던 종이가 까맣게 물들기를 몇 번째.

 

   …똑.

 

   어디선가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똑똑.

 

   마르코의 책장을 넘기려던 손이 그대로 허공에 멈췄다. 무척 작은 소리였으나 분명히 들렸던 탓이다. 감히 누가 이 시간에…. 집중이 깨진 마르코가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려다 멈칫 굳었다.

 

   “문밖에….”

 

   아무도 없는디. 마르코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방 옆도, 위도, 아래도. 모두 잡히는 기척이 없었다. 저만치 떨어진 기척이 전부였다. 이게 뭔…….

 

   똑똑똑.

 

   소리를 따라 마르코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창문이었다. 마르코의 매서운 시선이 창가를 훑었다. 수줍게 놓인 작은 화분 하나, 그 옆의 작은 고래 장식, 또 그 옆에 밝게 빛나는 잭오랜턴, 그리고….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마르코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유령?”

 

   똑똑똑. 똑똑똑. 창문 밖에 달라붙어 계속해 열심히 창문을 두드리는 희끄무레하고도 투명한 것은 바로 하얀 천을 뒤집어쓴, 유령이었다. 똑똑똑. 유령이 또다시 손을 높게 들어 창문을 두드렸다.

 

   “허.”

 

   마르코가 어이없음을 담은 탄성을 뱉어냈다. 그도 그럴게 하얀 천에 그려진 꺼먼 표정이 웃겼기 때문이다.

 

   [ ㅠ_ㅠ ]

 

   유령은 누가 봐도 울고 있었다. 게다가 살짝 들린 하얀 천 아래의 작은 발은 동동 구르고 있었다. 똑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몸짓이 애절하기까지 했다. 그를 빤히 들여다본 마르코는 픽 웃었다.

 

   “유령인데 왜 못 들어오고 있는 거여. 그냥 통과하면 되지 않남?”

   [ ㅠㅁㅠ … !! ]

 

   마르코의 말에 유령이 땅땅땅! 창문을 더 힘차게 두드렸다. 그 모습은 마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에 마르코가 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작게 웃었다. 마르코의 웃는 모습에 유령이 더욱 슬픈 표정으로 땅땅땅! 양손으로 창문을 두들겼다. 굉장히 절박하고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마르코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유령이 창문을 타고 쭈르륵 미끄러질 때가 돼서야 마르코는 웃음을 그쳤다. 마르코가 느긋하게 턱을 괴며 말했다.

 

   “뭐 하러 들어오려고. 애초에 네가 뭔 짓을 할 줄 알고 들여보내줘요이.”

   [ ㅠ_ㅜ ?! ]

 

   절망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던 유령이 당황한 듯 허둥지둥 일어섰다. 그리고선 손으로 잭오랜턴을 가리켰다. 마르코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호박? 저게 뭐가 어쨌다고.”

[ ㅜ_ㅜ ?? ]

“…?? 지금 나한테 뭘 물어보는 거여? 호박만 보고 내가 어떻게 아…, 아…?”

 

   말을 하다 말고 마르코가 깨달은 얼굴로 유령과 잭오랜턴을 번갈아봤다. 그러고 보니 할로윈 데이에, 호박을 켜놓으면…, 그걸 보고 와서는……. 마르코의 얼굴이 점차 난감하게 젖어들었다.

 

“설마 사탕 받으러 왔다는 소리는….”

[ ㅜ_ㅇ ]

“…….”

 

   관심 보였다. 입을 꾹 다문 마르코는 머릿속으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네가 그러고도 양심 있냐. 고의가 아니었긴 했지만. 어떻게 사탕 하나 받으러 온 애를…. 마르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밤중에 든 때아닌 죄책감이 양심을 쿡쿡 쑤셨다. 하지만 그러길 잠시, 마르코는 아직도 창밖에 달라붙어 있는 유령을 생각하고선 침착한 얼굴로 손을 뻗어 창문을 열었다.

 

“들어와요이.”

[ ㅇㅁㅇ !! ]

 

   유령이 열린 창문 틈과 마르코를 번갈아봤다. 마치 ‘진짜? 진짜로? 정말 들어가도 돼?’ 하고 묻는 듯했다. 그 물음을 전달받은 마르코가 확신을 담아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령이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했다. 그런 유령을 저도 모르게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마르코가 문득 생각했다. 저 유령, 창문이 열어져 있었어도 허락받느라 끙끙 되지 않았을까.

 

   그 사이 유령은 총총 다가와 창문 틀을 뛰어넘었다. 마침내 방 안에 들어선 유령은 굉장히 신나는 걸음으로 잭오랜턴의 앞을 왔다 갔다 맴돌았다. 두 발로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걸음걸이는 절로 마르코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참을 기뻐하던 유령은 돌연 제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선 무척 신나는 얼굴로 마르코를 올려다보더니 무언가를 받는 모양으로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 >ㅁ< !! ]

 

   ‘트릭 오어 트릿!’ 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거예요! 마르코는 단번에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령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르코는 기다렸다는 듯이 첫 번째 서랍을 열어 사탕과 초콜릿을 꺼냈다. 종종 당이 떨어져 앓는 마르코가 매일 채워 넣는 군것질거리였다.

 

   그렇게 지팡이 모양 막대사탕, 네모난 초콜릿, 동그란 알사탕, 하트 초콜릿, 삐쭉삐쭉 성게 모양의 사탕까지. 맛도 색도 가지가지인 과자들이 유령의 앞으로 불쑥 내밀어졌다. 마르코의 한 손에 소담하게 담긴 과자였으나 조그만 유령과 크기가 엇비슷했다. 이거 가져갈 수는 있는 건가. 아까 거 달래준답시고 왕창 꺼내긴 했는디…. 뒤늦게 마르코는 고민에 빠졌으나 유령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좋아하기 바빴다.

 

[ >ㅁ< ]

 

   유령이 그 특유의 걷는 듯 나는 듯한 걸음으로 과자 주위를 빙빙 돌았다. 뭐, 어쨌거나 달래주는 건 성공한 것 같았다. 마르코가 피식 웃으며, 바닥에 과자를 내려놓고 도로 손을 물렀다. 유령이 그 앞에 뽈뽈뽈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선 하얀 천 위로 톡 튀어나온 손이 제 천 아랫단을 잡더니 불쑥 들어 올렸다.

 

“오.”

 

   마르코가 작게 감탄했다. 가슴께까지 들어 올린 반투명한 천 아래로 역시 반투명한 몸이 보였다.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의외의 몸이었다. 마르코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마냥 어린애는 아니었구먼.”

 

   하얀 바지 위로 멀끔한 배가 보였다. 복근이 제대로 박혀있는 배였다. 유령이 그 상태로 굳어 찔끔찔끔 눈치를 봤다. 마르코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녀, 눈치 보진 말고. 이미 너한테 줬으니 네 거여.”

 

   마르코의 말에 유령이 안심한 눈치로 다시 천을 더 쭉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삼켰다.

 

“……??!!”

[ ^ㅁ^ ]

 

   마르코가 저도 모르게 놀라 벌떡 일어나려다 말았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새였다. 하얀 천이 부풀더니 과자를 집어삼켰다. 벌떡 일어난 유령의 손에는 지팡이 모양의 막대 사탕만이 들려 있었다. 유령이 흥이 난 듯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진짜 지팡이 마냥 사탕도 빙빙 돌려댔다. 꽤 능숙한 솜씨였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마르코가 빠르게 안정감을 되찾으며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중얼거렸다.

 

“거 참, 모르겠구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대한 항로라는 점에서, 유령의 존재는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어떻게 찾아왔냐는 점이나, 에이스가 갑판 한가운데에 놓은 호박 말고 이 조그마한 호박 불빛을 찾아왔다는 점, 그리고 너무 무해하고, 제가 친근함을 느낀다는 점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처음 본 유령한테 호감을 느끼고 있다니. 본인이지만, 본인이라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마르코가 새삼스레 유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리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경계해야 될 텐데…, 오히려 더 봐달라는 듯이 사탕을 던졌다 잡아채는 재롱을 보고 있노라면…….

 

“공연비라도 내줘야 되나? 사탕 더 줘요이?”

[ >_< ]

 

   표정은 신난 주제에 고개를 저어댔다. ‘충분해!’ 그냥 칭찬이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첫 등장 때의 구슬피 울던 모습과는 정 반대라 마르코가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었다. 유령이 헤실헤실 마주 웃는 느낌이 전해졌다.

 

   하지만 마르코는 잠시 뒤, 이상함을 눈치챘다. 저 유령…, 원하던 과자를 받았는데도 갈 생각을 안 한다. 어찌 해야 되나. 아직 미처 끝내지 못한 종이 더미를 슬쩍 흘긴 마르코가 잠깐 고민하더니 곧 유령을 바라봤다.

 

“내는 아직 끝내야 할 일이 있는디, 너도 그렇제? 여기서 왼쪽으로 쭉 걸으면, 갑판 위에 커다란 호박이 있구먼. 그 주위에 사람이 아주 많은겨. 그러니까 글로 가서 사탕 더 받고 그래요이.”

 

   마르코의 조곤조곤한 설명에 유령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나 보다. 마르코는 그리 생각했으나 잠깐이었다. 멀뚱히 선 유령은 조금도 움직일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마르코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안 가요이?”

 

   유령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뭐여…. 혼란에 빠진 마르코가 다시 물었다.

 

“왜 안 가요이? 아까 고개 끄덕였잖어.”

[ ㅇ_ㅇ ]

“눈만 댕그랗게 뜨면 귀엽기만 허지, 척척 알아듣지는 못 혀. 그리고 여태까지 내가 해준 게 몇 개여. 이번에는 네가 내 말을 들어 줘야제. 안 그런감?”

[ >_< … !! ]

 

유령이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맞아, 그렇지!’

 

“그럼 이제 나가 줄 거지요이?”

[ ㅇㅁㅇ … ?! ]

“느가 왜 충격받는 거여. 충분히 앞뒤가 맞는 말인디.”

 

   그렇게 유령과 마르코의 뜻밖의 대치가 이어졌다. 유령은 유령대로, 마르코는 마르코대로, 서로 의사가 통일되지 않으니 죽을 맛이었다. 인상을 찡그린 마르코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을 받침대 삼아 턱을 괬다.

 

“도대체 뭘 원하는지를 모르겠구먼. 알면 들어주고 후딱 보내 줄 텐디.”

[ … !! ]

 

   푸념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유령이 창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잠시 놀란 마르코였으나 유령이 안전하게 착지하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한편, 책상 위로 가뿐하게 착지한 유령은 걷는 듯 나는 듯한 걸음으로 책상을 가로지르더니…, ‘얍!’ 깃 펜을 발로 찼다.

 

   데구릇. 짧고 강하게 구른 깃 펜을 마르코가 멍하니 응시했다. 발길질 하찮어…. 아니, 이게 아니지. 깃 펜을 왜…? 마르코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대체 뭘 전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그 사이 유령이 책 한쪽 끝을 들어 올렸다. ‘호잇짜!’ 가볍게 던져진 책장이 파라락 넘겨지며 덮였다. 마르코의 나른한 눈이 순간 동그랗게 떠졌다.

 

“일하지 말라고?”

[ >ㅁ< !! ]

 

   ‘그거야!’ 유령이 이어서 두 손을 모아 머리 옆에 대는 시늉을 했다. ‘얼른 자.’

 

   마르코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뭐 이런 게 다 있남. 마르코의 손끝이 책상을 툭툭 두들겼다.

 

“이걸 하려고 널 내보내는 건디? 내가 자면 뭔 소용이여.”

[ ^ㅁ^ ]

“암것도 모른다는 듯이 웃지 말고.”

[ ^ㅁ^ ~ ]

“가만 보니 대답만 잘하고, 말은 안 듣는구먼.”

 

   마르코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쬐깐한 게 보통 고집쟁이가 아니었다. 결국 휴, 한숨을 내뱉은 마르코가 자포자기했다.

 

“내가 졌다. 잘게요이, 자.”

 

   항복하듯 두 손을 살짝 들어 보인 마르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 침대에 대충 드러누운 마르코가 유령을 보고 허, 다시 한 번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냥 대충 잔다는 시늉만 해볼까 했더니 유령이 잽싸게 촛불을 꺼트렸다. 영악하긴.

 

   하나, 둘, 셋. 마지막 촛불까지 꺼지자 주위가 어두워졌다. 눈을 몇 번 깜박여 어둠에 적응한 마르코가 어느새 제 코앞까지 다가온 유령을 바라봤다. 유령이 다시 한 번 머리에 두 손을 모아 댔다. ‘자.’ 단호하기도 허지. 마르코가 알았다는 듯이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마르코는 방 안을 가득 메운 햇살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두 눈을 끔벅였다. 완전 푹 잤구먼…. 정신이 개운했다. 느릿느릿 상체를 일으켜 앉은 마르코가 길게 기지개를 펴더니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꿈이었던가?”

 

   분명 살짝 열려있어야 될 창문이 살포시 닫혀 있었다. 잠시 생각한 마르코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손을 뻗어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엔 사라진 한 줌의 과자 대신 낙서가 적힌 작은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 >ㅁ< ) b ! ]

 

 

 

- The End.

무단 복제 밑 배포를 금합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