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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물결 은물결

 By. 박댈

 

   기묘한 꿈을 꾸었다.

 

 

   건반을 누르는 손에선 살이 사라져 음 하나를 누를 때마다 다각거리는 소리가 함께 울리는 꿈. 낯선 이들과 함께 다시 한번 닻을 올리고, 현을 들고 우리의 노래를 부르는 꿈. 깨진 얼굴 뼈 사이로 흘러내리던 그리움과 칼바람 스미던 틈 사이를 메워주던 진득한 애정의 점토가 있는 꿈.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리 위에 뜬 붉은 달을 올려보며 브룩은 실소를 터트렸다. 아, 이 순간이 꿈이구나. 한스러울 정도로 찬 웃음을 뿜어낸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연회가 끝난 밤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즐거웠고, 술잔을 들어올렸는지 이미 까맣게 잊은 듯 고요로 가득한 짙은 밤이다. 죽은 자들을 위한 밤이라고 했던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죽은 밤 속에서 브룩은 제 앙상하고 흰,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상아 같은 제 손을 내려다보며 힘 없이 배의 난간에 걸쳐졌다.

 

 

“시간이 멈춘 것 같군요.”

 

 

   이런 고요는 너무나 잔인해요. 브룩의 손이 바다로 뻗어졌다. 허공에서 힘없이 흔들리는 그 뼈만 남은 손은 물결처럼 한참을 바다 위에서 떠돌았다.

 

 

“…오늘따라 더욱.”

 

 

   오늘도 차마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혀 끝을 얼얼하게 만든다. 오늘이라면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뒷말에 브룩이 이를 달싹이던 중 잠잠하던 바다에서 한줄기 물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보다 두꺼운 물줄기는 반쯤 배에 걸려 있던 브룩의 몸을 밤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퐁당

 

   순식간에 브룩을 먹어 치운 바다는 붉은 잔물결로 웃었다.

    

 

 

 

 

   온 몸에 닿아오는 차가운 물덩이에 브룩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제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몸인데 꿈에서 라도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건 꽤 설레는 일 아닌가, 였다. 적어도 바닷속으로 몸이 닻 마냥 끊임없이 추락해 달빛조차 닿지 않는 깊은 그 숨 속으로 가라앉을 때 까지만 해도 그랬다.

 

 

[브-룩]

 

 

   그것은 부글거리는 물보라처럼 온 몸을 간질이며 제 이름을 불렀다. 브룩은 제 귀를 긁으려 손을 움직였지만 귀를 긁으려 한 손은 그 노력이 무상하게 귓바퀴에도 닿지 않았다. 브룩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대체 누가 내 이름을 부르지.

 

 

[브-룩]

 

 

   차갑다고 느꼈던 온도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어둠뿐이라 생각한 바닷속은 눈을 한번 끔뻑일 때 마다 밤에 묻혀 있던 제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남청빛 공간 안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고래 한마디가 제 눈빛을 받고 기분이 좋다는 듯 빙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번 더 환청이라 생각했던 제 이름을 불러온다.

 

 

[브-룩]

 

 

   브룩은 아무래도 팔이 망가진 것 같다 생각하며 입을 열어보았다. 분명 말을 뱉았다 생각했는데 제 입에서 나온 것은 물방울이 아닌 기이한 음파였다. 자신도 목소리와 같은 소리로 화답하고 있었다.

 

 

[누구….]

[나야, 사봉.]

 

 

   브룩은 제 눈 앞의 고래가 순간 웃고 있다고 착각했다. 별일이지. 고래의 표정이 보이다니. 하지만 그가 뱉은 이름은 분명 제 동료의 이름이었다. 커다란 몸에 어울리는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지금 데굴데굴 구르는 몸처럼 베이스를 돌려 댔었지.

 

 

 

   브룩의 눈이 커졌다. 설마, 정말 설마.

 

 

[…사봉?]

[정말 그리웠다, 브룩.]

[사봉, 어떻게, 아니 대체 왜 그런 모습으로….]

 

 

커다란 몸이 무색하게 고래가 된 사봉은 유연하게 굽이치며 브룩에게로 헤엄쳐왔다.

 

 

[널 찾아 헤맸지. 아주 오랫동안.]

[나를…?]

 

 

   브룩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생각했다. 다리가 한번에 같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마치 꼬리치는 것 마냥. 고래의 모습을 한, 여전히 커다란 사봉이 시원스럽게 이를 드러내 웃으며 브룩의 앞으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서 따라와. 시간이 없어.]

 

 

   붉은 달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수면으로 그리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봉의 뒤를 따라 엉성하게 꼬리짓 해보았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건 달콤한 꿈이고, 지금의 저는 그 어린 날의 라분처럼 진한 남색 빛의 아일랜드 고래란 것을 브룩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두 마리 고래는 밤바다를 가르며 둘 사이의 비어진 시간을 채우는 긴 여행을 떠났다. 대체 우린 왜 고래가 된 거죠. 우리 둘 다 라분이 되고 싶었 나보지. 길은 아는건가요? 그럼. 이 바다를 몇 번이나 헤맸는데. 널 찾기 위해.

 

   브룩은 웃었고, 그 웃음을 받아주는 고래의 웃음소리가 바다를 웅웅 울렸다.

 

   약속이라도 한 듯 조금 밝아진 바닷물로 올라오자 다른 고래 한 마리가 합류했다. 그의 이름을 들은 브룩은 한참을 멈춰 서 흐느꼈다. 잃은 이름들이 차가운 밤바다 속에서 재회하고 있었다. 브룩은 이 꿈 속에서 죽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름들이 하나, 둘 모였다. 이제 20마리가 넘은 거대한 고래 떼는 계속해서 바다를 가르며 헤엄쳐갔다. 줄지어 이어지는 그 길 가장 마지막에서 그들의 등을 바라보고 헤엄쳐가던 브룩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는 순간은 없었다. 별 같던 이름들이 눈 앞에서 제 이름을 부르고, 눈을 깜박이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 못내 감격스러워 브룩은 떨리는 울음소리를 멈추질 못했다.

 

 

[브-룩, 그만 좀 울지. 시끄러워.]

[그래. 시끄러워, 브룩. 차라리 노래를 불러라.]

[빙크스의 술! 빙크스의 술!]

 

 

   그리웠던 외침이었다. 브룩이 다시 한번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리자 다들 또 브룩이 감상에 젖었다며 놀려 댔다. 그렇게 울어서 바닷물이 늘어나겠냐며 비꼬는 소리도 저 앞에서 들려왔다. 브룩은 코를 훌쩍이며 그들의 신청곡이 아닌 다른 노래 곡조를 뽑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그들을 깨웠던 기상곡 ‘행복의 검은 손수건’이었다. 울음기 머금은 그 노래의 첫 소절에 고래들의 꼬리가 조금 더 빨라졌다.

 

 

   아아, 선장만 좋아하던 노래였지. 모두가 툴툴거렸지만 브룩은 꿋꿋하게 불러댔다.

 

   지금만큼은 바닷속이 아닌 배 위에서 모두가 항해하는 듯 어디쯤 인지 모를 거친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쳐갔다. 그것은 정말 룸바 해적단 다운 항해였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대답 없던 이들 사이에서 선두를 달리던 사봉이 브룩의 옆으로 서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우릴 기다리는 동료가 있는 곳으로.]

 

   심장이 있었더라면, 그건 이미 부푼 풍선 개구리처럼 펑 터져버렸을 것이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건넜다. 룸바의 숨으로 이어진 고래들이 순차적으로 수면 위로 튀어 오를 때면 투명한 남색 빛의 바다 스카프가 그들의 몸을 타고 올라와 붉은 달빛 아래 흩뿌려졌다. 브룩은 조심스럽게 묶어 제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넣어 두었던 옛 기억을 제 몸처럼 바다 위로 풀어 놓았다.

 

 

 

   바다와 이어진 하늘, 그 하늘 속을 가득 메우던 총총한 별빛과 너의 귀여운 울음소리가 수면 위를 박찰 때마다 바람결에 섞여 들려온다. 갑판에서 너의 작은 머리통을 내려보던 내 모습, 너를 보내기 전 다 자란 어른들이 갑판에 모여 숨죽여 울던 결코 부끄럽지 않던 기억들까지. 몇 날 밤의 어둠과 구름, 그리고 비바람 치던 날과 화창한 날 모두를 함께한 이를 곧 만날 수 있단 생각에 저 멀리 보이는 엉망으로 폭풍에 감긴 산 아래 바다조차 두렵지 않았다.

 

 

   브룩의 잇사이로 흘러나온 그 산의 이름, 리버스 마운틴에 고래들이 일제히 웃었다.

 

 

[수십번은 더 넘었지.]

[정문으로 가는 거야.]

 

 

   다 자란 고래들의 낮은 울음소리가 즐겁게 태풍을 끌어안았다. 처음으로 리버스 마운틴을 마주한 브룩의 뒤로 네다섯 마리의 고래가 달려들어 그를 무리의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물살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고래의 배에 올라탄 브룩은 벅찬 마음을 소리로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이를 악 물었다.

 

 

   나는 당신을, 그리고 너를 만나면 뭐라 말 할 수 있을까. 그 눈과 마주하며 이 세월 속 쌓인 그리움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시야가 흐려졌다. 비바람 때문이라고 변명해본다.

 

 

 

   몸이 빨려 올라간다. 힘차게 제 등을 밀어주는 고래들의 재촉에 브룩 또한 제 앞의 고래의 꼬리에 콧등을 박을 기세로 꼬리를 흔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고, 그들 옆으로 낙뢰가 떨어졌지만 고래들은 한치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두번 다시는 이 바다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룸바 해적단의 결의에 리버스 마운틴은 속절없이 제 가슴을 가르는 고래 떼를 허락하고야 말았다. 정상에 오른 고래들이 다 함께 귀환의 소리를 지르며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부오오오오오-

부오오-

부우우우우우-

 

 

   그에 화답하듯 등대 앞에서 커다란 물기둥 두 개가 솟아올랐다. 달빛을 담고 은빛 모래 같이 허공에서 잘게 바스라지는 그 곳엔 상처 많은 머리에 익숙한 해적기를 단 거대한 고래와 그 고래보다 조금 밝은 녹빛이 섞인 고래가 한 바퀴 공중제비를 넘은 뒤 커다란 물보라 속으로 다이빙했다.

 

 

   첫 눈에 알 수 있었다.

 

 

   브룩은 홀로 된 시간 동안 단 한번 큰 소리로 불러보지 못했던 그리운 이름들을 목이 터져라 불러보았다.

 

 

[요키 선장!!!!!!!라 부-운!!!!]

 

 

   요키가 웃으며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브룩을 놀려 댔다.

[늦어, 늦어.]

 

   그리고 처음으로 듣는 라분의 목소리에 브룩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기다렸어, 브룩.]

 

저보다 약간은 앳되지만 흠잡을 데 없이 멋진 중저음의 목소리에 브룩은 아이같이 울었다.

 

 

[나는… 단 하루도 잊어본 적 없어요. 단 순간도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질 못했어요.]

   울고있는 브룩의 머리에 콩 작게 라분의 상처 많은 얼굴이 비벼졌다.

 

 

[나도 한번 의심한 적 없어, 우리의 약속.]

 

 

   홀로 넘지 못할 이 산을 계속해서 찍어왔을 때, 매 년 이날 작은 고래들이 하나둘씩 나타났을 때, 그 신기루들이 사라지고 기억도 흐려져 다시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머리를 들이 받은 적은 있어도 돌아오겠단 약속을 의심한 적 없었어. 라분이 어릴적 그 웃음 그대로 눈을 접으며 말했다.

 

 

[부끄럽더군. 내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그것도 나의 가장 친애하는 동료에게 남긴 말이 고작 분하단 말이라니.]

 

 

   선장이 브룩과 룸바를 끌어안듯 물 속에서 뱅글 돌았다.

 

 

[조금 더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어야 했어. 모두와 함께 이곳에 돌아오고 싶었다고.]

 

 

   요키선장의 말이 이어지는 중에도 곳곳에서 제각각 크기의 고래들이 몰려들었다. 브룩은 두꺼운 고래의 눈꺼풀을 깜빡이며 라분과 요키의 모든 모습을 눈에 담았다.

 

   요키선장의 시그니처 문신은 없었지만 생전 그가 사랑하던 녹빛 코트처럼 그의 맨지르르한 거죽은 은은하게 청빛과 짙은 녹빛이 섞여 있었다.

 

 

   선장, 선장의 마지막 숨은 많이 아프진 않았냐고. 혼자 보낼 수밖에 없어 미안했다고 사과하자 요키는 냅다 장난스럽게 저보다 작은 브룩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라분 챙겨줘. 정말 오래 기다렸어. 대견하게도.]

 

 

   눈물이 핑 돌만큼 감사한 선장의 배려에 브룩은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라분을 향해 다가갔다.

 

 

[라분.]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도 울컥 울컥 가슴이 일렁인다. 부드럽게 그르렁거리며 라분이 브룩에게 온 몸을 비벼왔다. 지금 브룩에게 팔이 있었더라면 지금 당장 깊게 패인 라분의 상흔들을 매만져 주었을 것이었다. 안아주는 대신 엉망으로 그려진 밀짚모자 일당의 졸리로저에 제 머리를 비볐다. 

 

 

[더 빨리 오지 못해 미안해. 많은 일들이 있었어.]

[괜찮아.]

 

[보고싶었어. 함께하고 싶었어.]

[나도야.]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는 것이 지금만큼 감사했던 적 없었다. 요람 속 따뜻한 담요에 감겨 머리를 맞대고 누워 천장의 모빌을 바라보며 잠들기 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듯 지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루피씨를 만났구나.]

[그 막무가내…. 그렇지만 덕분에 정신 차렸어. 몇년간 아무도 와주지 않아 외로웠거든. 다들 나를 잊었을까 조금 무서웠어.]

 

 

   라분의 투정에 요키 선장이 깔깔거리며 서운함을 풀어주었다. 브룩 찾느라 바빴다니까. 온 바다를 돌았거든. 그래도 외로웠다고 투덜거리는 라분은 여전히 브룩의 눈엔 저를 쫄래 쫄래 따라다니던 아기 고래 같았다. 브룩은 모두가 사라진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 그 깃발을 단 배에 타고 있어. 그곳 에서도 연주해.]

[좋은 녀석들이니까.]

 

 

   라분이 지느러미로 물길을 만들며 브룩의 숨구멍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거짓말처럼 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은 우릴 위해 노래해줘.]

 

 

   메일리 없는 목이 메여왔다. 브룩은 뜬금없이 터져나올 것 같은 뜨거운 울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럼. 그리고 꼭 돌아올게. 이 곶으로.]

 

 

   노래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고개를 수면 위로 쳐 들고 우는 애들도 그치게 만드는 룸바 해적단의 자랑이자, 심볼인 한밤중의 끊임없는 메들리를 시작했다. 빙크스의 술에서 빙크스의 술로 끝나는 그 메들리는 붉은 달과 노란해가 자리를 바꿀 때까지 계속되었다.

 

   바닷물이 햇볕에 금빛으로 스러지는 수십의 고래들이 만드는 잔상에 자르르 자르르 흔들렸다. 다 함께 부르는 첫번째 밤이 요란하고, 고요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밤 사이 눈 아래가 거뭇하게 물든 크로커스가 뻐근한 온 몸을 뒤틀며 어딘가 들떠 보이는 라분의 머리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곶의 중앙에서 머리를 위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장난치는 모습에 밀짚모자 일당의 졸리로저가 세워졌다, 바다에 잠겼다를 반복했다. 라분이 일부러 크로커스의 온 몸이 흠뻑 젖도록 물을 밀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쏴아-

 

 

   몸의 반 이상이 젖었지만 크로커스는 한숨 쉬면서도 제 앞에 다가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라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 년 만이지. 어젠 아주 시끄럽던데, 라분.”

 

 

   부오오오-

 

   이 바다가 내어준 신기루 같은 하룻밤에 그 고래는 다시 한번의 기다림을 시작했다.

 

 

 

*

 

 

 

“…흠냐, 안됩니다. 아직은 더….”

 

 

   배의 난간에서 아슬하게 잠들어 있던 브룩을 나미가 흔들어 깨웠지만 그 답지 않게 잠에서 깨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미는 제 손이 닿은 브룩의 옷이 젖어 있음에 의아해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브룩?”

“안돼…. 아, 안녕하시렵니까.”

 

 

   눈이 없지만 눈을 뜬 브룩이 난간에서 가볍게 내려와 평소와 같이 가볍게 모자를 벗으며 나미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고 있던 나미는 브룩이 평소 던지던 가벼운 농담이 없어졌음을 느끼지 못하곤 대충 대답을 뱉으며 쭈그려 앉았다.

 

 

“안녕 못해…으, 아직도 배불러. 술도 너무 많이 마셨어.”

 

 

   브룩 또한 난간에 살짝 기대 앉았다.

 

“…그러게요. 아직도 몽롱하네요.”

“들어가서 조금 더 자. 웬일이래.”

 

 

 

   제 종아리를 손으로 툭 치며 걱정해주는 나미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잠시 브룩은 상념에 잠겼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으나, 아침은 왔고 자신은 현실에서 이 소중한 이들과 여정의 길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토록 들려주고 싶던 노래를 함께 불렀다는 것이었다. 브룩은 품 속 톤 다이얼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젯밤 술이 너무 … 달았나봐요.”

   꿈결같이. 아득하고, 그립게.

 

 

   잠시 그 잔향을 음미하던 브룩이 엉덩이를 떼며 유쾌한 목소리로 쭈그려 앉아 저를 올려다보는 나미에게 말했다.

 

 

“다들 노래로 깨워드릴까요?”

   아침 기상곡으로 적절한 노래를 알고 있거든요. ‘행복의 검은 손수건’ 이라고 하는 곡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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